[이지기획] 황혼기 접어든 용산전자상가, 재개발 이후 부활에 성공할까 ②
빠른 시장 변화 따라가지 못하다 마지막 남은 거점 사업마저 흔들
‘용팔이’, ‘손님 맞을래요’ 등 부정적인 이미지 자초하며 하락세 가속
타이밍 놓쳐버린 재개발...빠르게 떠나거나 한숨만 쉬고 있는 상인들

용산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던 나진상가 12동도 현재 재개발을 앞두고 가벽이 세워졌다. 그 와중에도 ‘지하상가는 영업 중’이라는 현수막이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사진=김용석 기자
용산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던 나진상가 12동도 현재 재개발을 앞두고 가벽이 세워졌다. 그 와중에도 ‘지하상가는 영업 중’이라는 현수막이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사진=김용석 기자

[이지경제=김용석 기자] ‘용산전자상가’는 최근 재개발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명칭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해당 명칭은 말로 이루 다 하기 힘들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누적돼 왔다. 얼마나 정도가 심했으면 ‘팔이’이라는 말의 시초이자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을 비하하는 ‘용팔이’라는 단어가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고, 20년 가까이 지난 일명 ‘손님 맞을래요’ 사건 역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재개발 이전까지 용산전자상가의 이런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용산전자상가 스스로가 만들어왔다는 데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용산에서 부적절한 행위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잘못된 짓을 자행한 상인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이를 단속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상인단체도 사실상 보기 힘들었다. 이런 굴레는 지금도 상인들의 부도덕한 행위와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면서 그들이 ‘용팔이’로 불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용산은 시장 변화를 주도적으로 끌어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과거의 영광에서 내려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자상거래가 시장의 주류가 되고, 구매한 물건을 택배로 받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동안 용산전자상가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물량 수급 인프라와 배송 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자신들이 날려버렸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 빠른 시장 변화 따라가지 못해...전자상거래 시장 오픈마켓 선점에 속수무책

용산전자상가에 소속돼 있던 사람들이나 IT 관계자들은 용산전자상가의 몰락에 대해 시장 트렌드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는 분석을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전국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물류 인프라와 시장 구성이 이미 완성형으로 갖춰진 지역이었으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전자상거래 도입이 늦어지면서 시장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용산은 현재도 전국 각지로 배송이 되는 주문 상품이 저녁 시간 때에 맞춰 탑차 단위로 오가는 지역이기에 시스템만 제대로 준비가 됐다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0년대 이커머스가 유통업계에 폭풍처럼 자리를 잡은 이후 용산전자상가 구성원들 역시 뒤늦게나마 인터넷을 활용한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다수의 매장이 고객을 상대로 “인터넷과 실제 시세는 다르다”고 외쳤던 가격비교 사이트에 직접 상품을 팔기 위해 입점에 나섰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직접 홈페이지를 개설해 제품 판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오픈마켓이 자리를 잡은 시기였고, 기존에 입점해 있던 대형 유통사 중심의 구성원들이 용산 상인들은 따라오기 힘든 노하우와 서비스를 선보이며 소비자 선택을 선점해가는 양상이 지속됐다. 다수의 당시 상인들은 “실시간으로 영업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물론 용산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용산에도 수많은 휴대폰 대리점이 문을 열며 무선기기 전문상가가 활성화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3년을 채 이어가지 못했고, 모바일 기기의 오프라인 구매처는 용산에서 신도림과 강변에 있는 테크노마트로, 더 나아가 각 동네마다 위치하게 되는 소위 ‘성지점’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휴대폰 대리점이 몰려있던 나진상가 지상 복도 매장은 이후 재개발이 확정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창고 등으로만 활용되다가 재개발을 이유로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폐쇄구역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무엇보다 일부 상인들의 부정적인 이슈와 사건에 대해 용산전자상가 전체 차원의 개선 작업이 없었다는 점이다. ‘용팔이’로 대표되는 비양심 불법업자를 비롯해 이미 사건이 벌어졌던 터미널상가마저 헐리고 사라진 상황에서도 ‘손님 맞을래요’로 대표되는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등 상가의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었다. 물론 이에 대해 상가 관계자는 “상인회도 그걸 모르지 않기에 지속적인 단속과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와 비슷한 사건이 최근까지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용산에 있는 매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나진상가 10동과 11동은 이미 임대상인들이 철수해 공실이 된 상태다. 굳게 닫힌 철문 건너에 관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모습이 용산전자상가의 현재를 대변하는 듯하다. 사진=김용석 기자
나진상가 10동과 11동은 이미 임대상인들이 철수해 공실이 된 상태다. 굳게 닫힌 철문 건너에 관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모습이 용산전자상가의 현재를 대변하는 듯하다. 사진=김용석 기자

◆ PC, 게임 등 마지막 남은 거점 사업들도 위태

용산전자상가의 위상과 규모를 만든 거점 사업들 역시 현재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오고 있다. 이미 수많은 업체가 폐업하거나 자리를 타 지역으로 옮긴 상황이며, 남아있는 매장들 역시 재개발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영업 방향을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에서 상가를 방문하는 고객들은 거래 주문 및 결제를 인터넷으로 먼저 마친 뒤 물건을 직접 찾으러 오는 경우나, 인터넷에서 구하기 힘든 중고 제품을 구하기 위해 직접 매장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립PC로 대표되는 컴퓨터 부문은 2017년부터 불어닥친 가상화폐 열풍과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살짝 반등했던 PC 수요 급증 외에는 다시금 판매량이 감소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상권 회복에 실패했다. 여기에 나진상가 재개발 여파로 인근 선인상가 등 매장 밀집 구역의 공실률도 급증하면서 시장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 물론 현재도 주말이나 휴일을 중심으로 방문객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인 방문객 숫자는 지속해서 감소세인 데다 매장의 숫자까지 줄어들면서 상가의 내실은 부실하다 못해 무너지고 있다는 의견이다.

게임 부문 역시 용산에서의 입지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콘솔 게임 매장이 대부분 재개발이 확정된 나진상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지상에 있던 매장들은 폐업 절차를 밟거나 황급히 위치를 옮기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재개발 여파로 꾸준히 영업을 해오던 플레이스테이션 공인숍 일부는 원효로2가 쪽으로 위치를 옮겼고, 콘솔 게임 구역을 조성하고 있던 매장들 역시 옆 건물인 전자랜드나 강변‧신도림 테크노마트 등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나진상가 지하에 있는 매장들은 임대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매장 철수 없이 영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상가 구역의 유동인구를 책임지고 있던 두 사업 부문이 흔들리면서 용산전자상가의 용도는 사실상 물건을 보관하고 배송을 보내는 물류창고 역할만을 가까스로 소화하고 있다. 매체 등을 통해 주목받기도 했던, 줄을 서서 제품을 구매하는 등의 모습은 대부분 아이파크몰로 대표되는 대형 유통사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머지 90%를 차지하는 상가 대부분의 매장은 인터넷 주문을 받고 매장에서 바로 퀵 발송이나 택배 발송으로 제품을 보내는 역할만을 소화하는 데 급급한 형국이다.

나진상가 재개발 여파로 인근 선인상가 역시 가파른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과거 조립PC 등을 전문으로 하던 매장들이 들이찼던 곳도 최근 몇 년째 방치되고 있다. 사진=김용석 기자
나진상가 재개발 여파로 인근 선인상가 역시 가파른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과거 조립PC 등을 전문으로 하던 매장들이 들이찼던 곳도 최근 몇 년째 방치되고 있다. 사진=김용석 기자

◆ 계속 지연되는 재개발 착수...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지속

이런 용산전자상가의 암울한 분위기와 외관은 초기 재개발 계획이 5년 이상 지연되면서 축적된 부산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상가 지역에 진입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쳐 가야 했던 터미널상가가 2015년 완전히 철거되고, 이후 2017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이 새롭게 개장하며 인근 구역에 대한 재개발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사모펀드인 IMM이 나진상가를 2600억원에 인수하면서 재개발 논의가 속도를 내는 듯했으나, 서부T&D와 이중계약 문제로 법정 공방이 발생하는 등 재개발 일정은 2021년 이후로 연기되고 만다.

재개발 일정의 계속된 연기는 자연스럽게 기존 건물의 방치로 이어지게 된다. 나진상가 외에도 여러 소규모 건물과 구역의 재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상가 내 가장 큰 규모의 재개발로 분류된 나진상가 구역의 재개발이 차일피일 지연되면서 비어버린 매장과 건물은 자연스럽게 방치됐고, 이는 곧 건물의 노후화와 외관 낙후로 이어졌다. 특히 재개발의 시발점이 된 용산역 민자역사, 서울드래곤시티 호텔과 직접적인 외관 비교가 이뤄지면서 상가 구역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빠르게 부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은 재개발 구역 내에서 상업 활동을 이어가던 임대 상인들에게 직격타로 다가왔다. 재개발 일정이 세워지는 듯하다가 꼬리 감추듯 사라지고, 다시 빠르게 속도를 내는 듯하면서도 방치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용산전자상가에 속한 그 누구도 재개발 일정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 오랜 시간 지속됐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언제까지 매장을 비워줘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통지받지 못해 누구는 빠르게 용산을 떠나고, 누구는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남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해당 이슈는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최근 용산에서 자리를 옮긴 한 상인은 “용산전자상가의 재개발 이슈는 용산역 민자역사에 있는 복합쇼핑몰이 리뉴얼 공사에 돌입한 2017년부터 언급됐지만, 2024년 현재까지 제대로 건물이 헐리거나 새로 건물이 올라간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일부 매장을 대상으로 끝까지 버티면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소문 등이 퍼지면서 상인들이 특정 날짜에 맞춰 일괄로 자리를 비워주거나 하는 최소한의 일정 조율조차 무산돼 재개발 착수에 예상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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