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기획] 황혼기 접어든 용산전자상가, 재개발 이후 부활에 성공할까 ①
개장 후 약 30년간 국내 IT업계 ‘심장’ 역할
PC‧게임시장 성장으로 90년대 전성기 누려
유통구조 변화 못 따라가며 첫 기회 놓쳐

용산 전자상가는 지리적 인프라에 물류, 상권 등이 더해지며 전기/전자 전문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서울특별시
용산전자상가는 지리적 인프라에 물류, 상권 등이 더해지며 전기‧전자 전문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서울특별시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잊혀졌던 용산전자상가가 재개발 본격화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에 [이지기획]에서는 용산전자상가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3회에 걸쳐 가지고자 한다. 첫 번째 순서로 용산전자상가의 성장 과정과 함께 국내 IT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돌아본다. 여러 번의 기회와 시기를 놓쳐 현재는 재개발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한때는 그 어느 곳보다 가파르게 성장하던 희망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이지경제=김용석 기자] 서울 3대 전자상가 중 하나이자 IT 하드웨어 유통의 심장으로 불리던 용산전자상가가 본격적인 재개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건물에 대한 사모펀드의 지분인수와 법적 분쟁, 이중계약 등 여러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그동안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남아있던 건물에 본격적인 입점 상가 정리 및 건물 철거를 위한 사전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용산전자상가는 지금은 이렇듯 재개발 이후의 발전 가능성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처음 상가단지가 조성됐던 1987년부터 2010년 후반대까지 국내 IT산업의 심장 역할을 해오던 곳이었다. 1990년대 PC 시장 활성화 및 전 국민적인 보급 열풍을 시작으로 콘솔 게임기, 음향기기, 디지털카메라 등 수많은 제품이 용산에서 공급·유통되며 시장 활성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IT 태동기와 같이 성장한 용산

용산전자상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청계천 세운상가의 전자상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이다. 1969년 당시 청계천 세운상가에 있던 전자상들을 용산역 서부에 있던 청과물시장 부지로 이전하기로 하는 계획을 정부가 수립했으며, 이것이 본격적으로 전자상가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기존 전자상들은 대부분 TV, 라디오 등으로 대표되는 가전제품을 주로 취급하고 수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용산에서는 빠르게 컴퓨터 부품과 시스템을 취급하면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PC 보급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이후 용산전자상가는 컴퓨터와 각종 전자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내 대표 상권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당시에는 존재조차 생소했던 컴퓨터 부품 취급 매장들이 잇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1990년대 후반에는 PC 시장 확대의 주축이 되었고, 이와 동시에 용산은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온 제품들을 구매해야만 했던 음향기기의 본격적인 유통 창구로도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카메라도 사치품으로 분류되던 과거와 달리 디지털카메라 등장 이후 대중화 흐름을 타며 용산전자상가가 ‘디카 열풍’의 주역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외에도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시장을 풍미했던 MP3 플레이어, PMP, PDA, 넷북, 전자사전 등 온갖 종류의 전자기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용산전자상가를 첫 번째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 역시 보급 초기에는 용산이 주요 구매처 중 한 곳으로 인식되면서 그 어느 곳보다 많은 통신사 대리점들이 난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의 위상은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필두로 새로운 ‘성지’들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축소됐지만, 사실상 스마트폰 보급 초기의 수훈에는 용산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과거의 분위기는 현재도 용산에 있는 여러 IT업체들의 A/S 센터 위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수많은 업체들이 용산 인근에 사무실을 차려 유통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동시에 제품의 사후 서비스를 위한 A/S 센터를 용산전자상가에 입점시켰다. 당시 업체들은 용산에서 제품 물류를 관리하고 유통을 해왔기에 A/S를 위한 부품 수급 및 교환을 위한 제품 확보 역시 용산이 지리적으로 가장 용이했고, 방문고객 역시 교통 등을 이유로 용산을 선호해 자연스럽게 용산에 A/S 센터를 마련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용산 전자상가는 과거 세운상가의 전자상들로 시작해 현재 각종 IT 관련 전문 매장으로 발전해 왔다. 사진=서울특별시
용산전자상가는 과거 세운상가의 전자상들로 시작해 빠르게 각종 IT 제품을 아우르는 대규모 상가로 발전했다. 사진=서울특별시

◆ PC와 게임, 용산 전성기의 ‘쌍두마차’

용산전자상가의 초반 부흥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부문은 역시 PC로 대표되는 컴퓨터 시장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콘솔 게임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PC 시장이 용산전자상가의 전체적인 규모와 이미지를 형성했다면, 게임 시장은 용산전자상가의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잡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이유로 다수의 입점 상인들이 자리를 떠난 이 순간에도 용산전자상가에는 PC 관련 매장과 게임 판매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재개발 결정으로 매장 위치 자체는 옮겼을지언정 용산전자상가 내에 계속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은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용산전자상가의 PC 시장은 한국에 IMF가 휩쓸었던 1998년부터 아이러니하게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미래 신사업으로 PC와 인터넷을 메인으로 삼았고, 이를 놓치지 않고 여러 업체가 ‘99만원 PC’ 등을 선보이면서 PC 판매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PC 보급과 시장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IT산업 전반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PC 시장 역시 대기업 중심의 완본체 PC 시대에서 조립형 PC 시대로 발전하며 급작스러운 성장기에서 안정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 시장은 과거 일본에서 하드웨어와 타이틀 모두를 직접 구매해 들여오던 시절부터 용산에 자리를 잡고 영업하던 매장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장 활성화 시점은 많은 사람들이 2000년 전후로 보고 있다. 특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국내 정식 발매된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후 지금의 현역 제품인 ‘닌텐도 스위치’, ‘X박스 시리즈 S·X’, ‘플레이스테이션5’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여전히 용산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두 시장의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용산전자상가의 모습을 바꾸는 역할도 했다. PC 하드웨어를 유통하던 해외 업체들은 물류창고와 함께 제품을 직접 보고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체험존을 용산에 마련했고, 게임 유통사들 역시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별도의 체험공간을 용산전자상가에 배치했다.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업체들의 출시 발표 행사 등 오프라인 이벤트가 용산에서 진행하는 형태로 이어지며 용산의 위상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 영원할 줄 알았던 유통구조의 급변

이런 가파른 상승세는 용산전자상가 내 상인들에게는 물론 긍정적인 요소였지만, 동시에 고객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호객행위 및 비양심 판매가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용산전자상가에 입점한 일부 사업자의 경우 최대한 빠르게 수익을 낸 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장을 운영했고, 이런 매장을 중심으로 바가지요금, 진열품 재포장 판매, 가격 담합 등의 잘못된 행태가 적발되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여기에 다른 상인들 역시 비양심 상인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뒤늦게 이루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쌓여갔다.

여기에 2007년을 기점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다나와’로 대표되는 가격 비교 사이트와 오픈마켓 중심의 인터넷 구매 활성화는 용산전자상가의 존재 이유에 치명타를 날리는 계기가 됐다. 물론 현재 용산에서도 가격 비교 사이트를 직접 보여주며 가격을 알려주는 매장도 많고, 인터넷으로 제품을 구매한 뒤 매장에 방문해 제품만 수령하는 경우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시장의 흐름을 용산 스스로가 놓치면서 고객이 점차 감소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기만 하는 업장이 대부분인 상황이었다.

현재는 용산이 아니더라도 주문 취급 및 제품을 발송하는 오피스텔형 사무실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각지에 분포돼 있으나, 당시만 해도 물류 보관 및 공급의 대부분이 용산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던 분위기였기에 환경 변화를 수긍하지 못하는 업주들이 상당했다. 용산 외에 강변 테크노마트와 서초동 국제전자상가 등이 존재하긴 했지만, 물량 대부분을 용산과 그 인근에서 소화하고 있었기에 이런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했다는 것이 당시 종사자들의 공통된 회상이다.

이에 대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한 용산 입주 상인은 “가격 비교 사이트가 2000년대 초에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부터는 아예 매장 앞에서 실시간으로 가격 비교가 가능해지면서 바가지 등을 씌우는 불량 매장엔 아예 방문조차 하지 않는 고객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현명한 소비자들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는 와중에 용산은 사실상 첫 번째 기회를 흐지부지 놓쳐버리면서 지금의 위치로 주저앉는 시발점을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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