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가상자산 자체가 아닌 ‘거래 행위의’ 증권성 판단
“권리의 실질적 내용 기준으로 개별사안별 판단” 원칙 동일
김갑래 연구위원 “韓시장 맞는 증권성 심사 기준 개발해야”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의 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후 경찰관들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정석규 기자] 미국 연방법원이 루나(LUNA) 코인 판매행위를 증권 판매로 인정하면서 국내 테라·루나 사태 재판에 끼칠 영향이 주목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법원 약식명령문에 따르면 제드 라코프 미 뉴욕남부지방법원 판사는 암호화폐 테라·루나를 만든 '테라폼랩스'가 암호화폐를 대중에게 판매하며 연방 증권법을 위반했다고 약식판결했다.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테라(UST), 루나(LUNA), w루나, 미르(MIR) 판매는 투자계약이기 때문에 증권에 해당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테라·루나 사태는 2022년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가 달러화와의 페깅(가치 고정)이 끊어지면서 테라의 가격을 지지해주던 자매 코인 루나의 가격도 연쇄 폭락한 사건이다. 한때 시가총액만 50조원이 넘어섰던 대형 코인들이 테라, 루나 코인과의 연결고리로 인해 연쇄 급락하면서 국내외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권 씨는 테라·루나의 비정상적인 작동 방식과 폭락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투자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해당 코인을 계속 발행한 혐의를 받는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돼 구금돼왔다.

한편 테라-루나(Terra-LUNA) 사건에 대한 자본시장법 적용의 전제는 테라 또는 루나에 대한 판매행위가 증권 판매행위인지의 여부이다. 증권 판매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은 테라와 루나를 ‘증권’으로 판단한다. 미국 검찰은 그를 증권 사기를 비롯한 총 8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권 씨를 증권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뉴욕 연방법원은 SEC 주장을 받아들여 권 씨의 증권법 위반 책임을 인정했다. 즉 테라와 루나를 증권으로 봤다는 얘기다.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미국 로펌 BESPC는 권 씨가 투자자 돈을 가로챘다며 연방증권법, 거래소법, 캘리포니아주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그를 캘리포니아 북부법원에 고소했다.

하지만 국내 법원은 미국과 달리 코인 ‘증권성’을 인정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코인 증권성 판단에 대한 관련 법이나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검찰이 적용한 권 씨 혐의를 살펴보면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부정거래, 공모규제 위반, 무인가영업),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배임·횡령), 특정금융거래정보법 위반 등이다. 특히 자본시장법은 피해가 50억원 이상으로 클 경우 5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루나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야 한다.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권 씨는 사기 혐의로만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국산 가상화폐(가상자산)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이자 권도형(32) 테라폼랩스 코리아 창립자의 측근으로 알려진 한창준(37) 테라폼랩스 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제기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한씨는 테라·루나 폭락 직전인 지난 2022년 4월 권씨와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 이후 지난해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지난달 6일 국내 송환됐다. 이후 송환 약 2주 만인 지난달 21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씨는 현재 검찰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사기), 자본시장법위반(사기적부정거래),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한씨 측 변호인은 지난달 27일 열린 공판에서 “공모 관계 등 공소사실에 대해 일체 부인한다"며 “기본 전제 사실인 테라프로젝트의 허구성·기망성에 대해서는 책임경영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특히 검찰이 적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루나 코인 등이 투자 계약 증권이나 파생 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단 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측도 첫 재판에서 ”루나는 증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놓고 검찰과 이들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테라, 루나 코인 판매를 증권 거래로 규정한 이유는 ‘자산’이 아닌 ‘판매행위’를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28일 판결에서 루나 판매행위(offer or sale)의 거래구조가 하위(Howey)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해당 사안에 관련하여 루나를 증권으로 인정했다. 미국의 하위 기준은 투자자가 ▲공동의 사업에 ▲금전을 투자해 ▲제3자의 경영 노력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투자자의 합리적 기대가 있는 거래구조를 모두 만족하는 거래라면 증권 거래로 취급한다는 기준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당 판결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SEC는 루나 판매 과정에서 있었던 테라폼랩스등(테라폼랩스, 권씨 등)의 발언이나 약속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제3자의 경영 노력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루나 투자자의 합리적 기대가 있었음을 입증했다”며 “루나의 증권성 판결은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판단에 있어 해당 자산이 그 자체로 투자계약에 해당하는가에 관한 입증이 아닌 해당 자산 판매행위의 거래구조가 투자계약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입증이 핵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루나 등 증권성 있는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인정한다고 국내 가상자산거래업자(가상자산거래소)의 업무가 불법 증권중개업무로 취급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자본시장법은 발행공시(증권신고서), 부정거래행위 금지 및 배상책임,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특례에 관해서만 투자계약증권을 증권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계약증권을 유통시키는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미인가 투자중개, 무허가 거래소 등에 관한 사업자 규제 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다. 앞서 2022년 증권선물위원회는 뮤직카우의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했지만 해당 투자계약증권을 유통시킨 뮤직카우가 자본시장법상 미인가 투자중개업자 또는 무허가 거래소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례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수사당국과 금융당국은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인정에 대한 시장의 파급효과에 대해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히 불공정거래와 연루된 알트코인(잡코인)에 대한 증권성 심사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며 “증권사기 혐의와 투자자 피해규모가 큰 테라-루나 사건과 같은 유형의 디지털자산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본시장법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다만 오는 7월19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전까지 국내 가상자산시장의 불공정거래 규제체계에는 규제공백이 존재한다. 따라서 대규모 유통시설을 이용한 디지털자산 사기 사건에 대해서는 관련 판매행위가 증권판매에 해당되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해 일반 사기죄보다 범죄 입증이 용이하고 처벌이 엄격한 자본시장법상의 불공정거래 조항을 적용할 필요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투자상품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투자계약증권 조항을 축소해석하여 규제공백을 방치하여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점에서 국내 수사당국과 금융당국은 미국의 ‘판매행위’ 중심적 증권성 인정 법리를 참조하여 국내 자본시장법과 시장환경에 부합하는 증권성 심사 기준과 실무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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