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예탁금 상승세 꺾여...개인 투자자 증시 탈출 감지
신용잔고도 하락...금리인하 시점 연기에 '빚투' 열기 식어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시스

[이지경제=정석규 기자] 국내 증시에서 예탁금과 '빚투'(빚을 내 투자)가 감소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 리스크, 환율 급등, 미국의 금리인하 지연 우려 등으로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55조47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59조6299억원) 대비 4조원 이상 줄어든 수치다. 월간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올해 ▲1월 50조7434억원 ▲2월 54조3356억원 ▲3월 56조5229억원으로 올해 들어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의 평균은 56조3204억원을 기록하며 상승세가 꺾였다.

투자 열기를 가늠하는 지표인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을 팔고 찾지 않은 돈으로, 증시 대기자금으로 불린다. 투자자 예탁금이 줄어든다는 것은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올해 들어 투자자 예탁금은 증시의 상승세와 함께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1월 말께 50조원을 밑돌았으나 지난달 초 57조원대로 올라섰고, 이달 1일에는 59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다시 빠르게 축소되면서 지금은 55조원선이 위협받고 있다.

하락장에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도 한풀 꺾였다. 지난 18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9조624억원을 기록했다. 코스피시장이 10조2839억원, 코스닥시장은 8조7785억원이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한 자금이다. 지난해 11월(16조원대)부터 꾸준히 증가하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2일 19조5327억원으로 약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으나 이후 5000억원 가까이 빠졌다.

신용공여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 자금을 증권사로부터 빌려 아직 갚지 않은 돈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주가 상승이 예상될 때 신용공여 잔고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빚투' 수요를 가늠하는 지표로 분류되기도 한다.

신용공여 잔고는 정부가 추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증시에 기대감을 불어넣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업황 개선이 기대되며 증시가 강세를 보이자 점차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월 19일 기준 18조원을 넘어섰고 지난달 14일 올해 최초로 19조를 넘어서며 한 달에 1조원꼴로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 4일부터 15일까지 7거래일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이달 초 2750선을 유지하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17일 2600선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중동 리스크와 원·달러 환율 상승, 미국의 금리인하 지연 전망까지 3연타를 맞은 탓이다. 23일 코스피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 2623.04로 장을 마감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주 불거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코스피(KOSPI) 등 국내 주요 지수 하락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금리 인하 시기와 맞물려 증시 매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실제로 지난 11일까지 2706.96으로 장을 마감했던 코스피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한 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2500선까지 밀려났다. 지난 17일에는 전체 증시 주식위탁매매 미수금 중 반대매매 금액이 172억원을 기록하며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이 1.8%에 달하기도 했다.

반대매매는 고객이 증권사와 신용거래를 통해 주식을 매입한 후, 빌린 돈을 약정한 기한에 갚지 못했을 때 증권사가 임의로 주식을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 미만으로 유지되는데, 최근 ‘빚투’에 나선 투자자들의 주식이 지수 하락으로 강제 청산되면서 2% 가까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견조한 미국 경제지표와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의 긴축적 발언도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당초 올해 6~7월경으로 예상됐던 미 연준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더 미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3월 FOMC 이후 연준 위원들의 연설을 종합적으로 살펴봐도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연준의 금리 인하가 올해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는 추가적인 하락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한다. 밸류에이션 부담이 적어졌고, 환율 강세의 경우 기업의 펀더멘털과 수급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점이 있어 국내 증시에 불리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투자심리, 수급 불안에 의한 등락은 감안해야 하지만 단기 변동성 확대는 비중 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외국인의 선물 매수 전환시 현물 매수와 프로그램 매수가 더해지면서 반등에 탄력을 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정다운 연구원은 "현재 미국증시는 정당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코스피 역시 지정학적 갈등이 유가 상승, 실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낮아진 점을 감안하면 주가의 하방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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